앵두
앵두 한알
이외수
어린시절
처음으로 내 가슴
설레게 하던
여자애
가시에 찔린 손가락
호오 불어 주었지
그 선명한 피 한 방울
아직도
가슴 아리게 하네
만수리 앵두
안 용 민
달려가
한 웅큼 흝어 내릴까
흔들어 떨어 트릴까
터질 것 같은
선홍 빛 격정으로
나를 유혹하네.
풀어헤친 네 절정
뉘 아니 봐 주더냐
발 길 드문
깊은 산 속
초로 노인의 오수와 함께
무심히 버려진
네 자태는 앙증스레 고와
애처롭기 까지 하다.
몸은
벌써 달이 차
만삭이 되었건만
거두어줄 네 님은
어디에서 헤메는지
붉어진 그 입술로
내게
입맞춤 해주련 ?
♣♣♣♣♣♣♣
나병춘네 앵두나무
채필녀
나병춘네 집에는 앵두나무 백그루가 있다고 한다
백그루가 넘을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지만
누구도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다고 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백그루 앵두나무에서 연분홍 봉오리가 화약처럼 터지는데
바로 그때, 나병춘과 그 애인은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한다
하얗게 타는 앵두나무 앞에서 사람들은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이때부터 나병춘과 그 애인의 음모가 숨막히게 돌아가
온 몸이 눈으로 변해 번들거리고
독침 같은 빛이 서린다고 한다
4월, 보름달이 촛농을 흘리기 시작하면
나병춘과 그 애인은
한해 묵은 앵두술을 내놓는데
사람들은 먼저 그 빛깔에 물들고
향에 취하고 맛에 쓰러진다고 한다
앵두꽃이 다 지도록 먼저 취하고
나중 마시기를 되풀이 해
술이란 술은 전부 거덜난다고 한다
한번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데
이듬해 그 자리엔 없던 앵두나무가 새빨갛게
서 있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나병춘네 집에 초대되어 간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나오는 걸 못봤다고 한다
흉흉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나병춘네 앵두나무는 백그루가 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는데
누구는 멀쩡한 자기 자신을 세기도 하고
누구는 아직 망설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