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꽃, 나무의 詩

때죽나무 꽃

必 霧 2011. 5. 13. 15:19

 

 

때죽나무의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꽃들이 아래를 보고 피어 마치 샹들리에 같은 느낌입니다.

 

 

 

 

 

 

 

 

 

때죽나무꽃

 

 

안재동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때죽나무에 활짝 핀 무수한 하이얀 꽃들이

그 순백의 꽃들이 하나같이

땅바닥만 바라보며 웃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 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양

어쩌면 세상에서 제멋만이 최고인 양

그도 아니면

푸른 하늘에 앞다투어 얼싸 안기려는 양

가지가지 색깔과 양태로 요란하게 분단장한

세상의 여느 꽃들과는 딴판이다

때죽나무꽃에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단 한 순간도 땅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로등에 물어보라고만 한다

 

 

때죽나무꽃의 주문을 헤아리려

땅거미가 온 거리를 삼킨 뒤의 저녁 무렵

가로등에 바짝 다가섰으나

고개를 쳐들고 바라만 보고 섰다가 조용히

돌아서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은 가로등을 만들지만

고장 나기 전까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다

어쩌면 때죽나무꽃과 가로등의 심정으로

지금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끔

땅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 즐거울 때 있다

 

 

세상 모든 꽃들이 하늘만 바라보는데

때죽나무꽃이 아니라면

어느 꽃이 맨땅에 눈길 한번 줄 것인가

제 얼굴의 아름다움도

땅에 의지하고 있는 제 뿌리 때문임을

꽃들은 알기나 할까?

땅은 때죽나무꽃더러 이른다

세상 그 어느 꽃보다 수더분한 이름이여

그 어느 꽃도 비할 수 없는 참빛의 얼굴이여

갈수기의 단비처럼 고마운 존재여

순박의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