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로키아
고로키아입니다.
워낙 잎이 작아 잔가지가 빽빽하게 차있는데도
속가지가 전혀 마르지 않고 계속 잘 자라줍니다.
주변 분들 삽목용으로 가지 몇 개 잘라준것 외에는 전정 한 번 하지않고 키워가고 있습니다.
추위에 강하고 병충해도 없고
4~5월경에 밥알만한 노란꽃이 핍니다.
꽃은 작지만 향기도 있습니다.
손질하지 않아도 자체로 독특하고 회화적인 느낌을 갖고있어
이 나무는 점차 큰분으로 옮겨가면서 자라는대로 마냥 두고 볼 생각입니다.
내년 봄에는 아주 거슬리는 가지 몇 개만 삽목을 해서 수형을 잡아가면서 키워 봐야겠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글을 조금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고로키아와 <꼬박 다섯길>
원래 <꼬박 다섯길>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노래 가사속의 글귀입니다.
" 그대의 아버지는 꼬박 다섯길 깊은 물속에 누워 있네
그의 뼈는 산호가 되었고
그의 눈은 진주
그는 영원불멸이 되었지만
더 풍요롭고 기묘하게 바뀌는
바다의 변화는 어찌 할 수가 없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였던 잭슨 폴록의 작품을 엑스레이로 분석검사하는 과정에서
두터운 물감층 아래에 납물감으로 그린 인체형상 하나가 숨겨져 있는것이 발견되자
작가인 랄프 만하임이 템페스트에 나오는 노래가사를 따 작품명을 <꼬박 다섯길>로 제안하여
명명되게 됩니다.
폴록의 <꼬박 다섯길>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는 세로로 세워진 그림이지만 가로로 눕혀서 올려보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폴록이 살아서 그림이 눕혀진것을 보아도 크게 개의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폴록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은
수미터가 넘는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화면의 사방을 걸어다니거나 화면 안으로 들락거리면서
안료를 뿌리거나 흘리고 던지고 떨어트리는 행위에 몰입해 버립니다.
행위가 끝났을 때 그 행위의 흔적들이 폴록 자신에게도 생소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위, 아래나 가로, 세로가 따로 있을리 없습니다.
결국 폴록의 화면에는 조형성의 성립요건인 중심/주제/포인트/구조가 없습니다.
이러한 작품행위를 통해 폴록은 미술의 해탈을 추구했는지도 모릅니다.
납물감으로 그린 인체형상위에 자신의 행위를 덮어 씌워 형상을 지우거나
덮어버림으로써 이전의 회화들을 조롱하는 상징적인 주술효과를 노렸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촛점없이 균등하고 반복적 행위로 점철된 폴록의 All over된 화면은
나무 자체의 본성에 의해 잔가지들로 빽빽히 들어차
줄기의 구조나 가지의 전개가 무의미한 고로키아의 느낌과 참 많이 닮은것 같습니다.
" 나는 그림 속에 있을 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 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저질렀는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과 친숙해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가능해진다. 그림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니기 때문에 나는 그림을 고치거나
이미지를 부수는 일에 대해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림이
완성되기를 허용해 줄 뿐이다."
대중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폴록은 결국 제가 태어난 해에
44살의 나이로 만취상태에서 운전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고로키아의 부분사진입니다.
폴록의 다른 작품 <라벤다 미스트>와 고로키아의 부분사진입니다.
많이 닮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