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興 - 불이분재도량3회전시회에 붙여
낚시를 하다보면 다른 낚시꾼의 낚시를 구경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손끝 하나 까딱 안하고 편하게 앉아 눈 맛을 보는 거지요.
올해 딴 짓을 좀 하느라 어영구영 하다가 전시준비를 못해 같이하지 못하게 된 불이분재도량 3회 전시회.
모처럼 눈 맛을 실컷 보았습니다.
천변만화한 자연 속에서 나무들이 뿌리 뻗고 살아가는 터전들도 다 다릅니다.
흙이 무너져 내리는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 흙 한 줌 없는 바위를 비집고 들어간 한줄기 뿌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무,
척박하고 건조한 자갈밭에서 살아가는 나무,
허리를 들 수 없을 정도의 드센 바람에 시달리며 자라는 나무,
경쟁자 없는 넓은 땅에서 마음껏 양분과 햇빛을 차지하고 자라는 나무,
자리를 선점한 나무들 틈에 낑겨 가끔씩 들어오는 햇빛 한 점씩 받아먹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무 등등......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도 나무들의 세상과 다를 바 없어 우리는 나무들을 이해하고 나무들과 교감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바로 이런 나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나무를 눈을 씻고 봐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고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습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기도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표현하는데 있어 정해진 삼각형의 틀 안에
빽빽하게 채워진 잔가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진은 열심히 찍었지만 사진의 상태가 안좋아 그냥 인상깊은 나무 몇 점 올려봅니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수형이지만 멋스러운 장수매.
본래 거기서 그렇게 있었던것 같은 분과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느낌의 분인데 ...
최현심 작가의 걸출한 감각과 ZERO님의 깊은 고민이 분재분의 새길을 연것 같습니다.
옴폭한 돌에 편안히 앉아 순진무구하게 자라는 감태나무.
반그늘에서 유순하고 고결한 느낌으로 자라는 회잎나무.
어린 순을 따 살짝데쳐 무쳐먹으면 맛도 순하면서 고상한 맛입니다.
가지가 날카롭고 가늘게 쭉 뻗는 쥐똥나무.
겨울에 가지가 잘 말라 여백을 만들어갑니다.
네 나무 각자의 가지펼침이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역시 직선적인 매화와 부드러운 애기감의 가지펼침이 대비됩니다.
댕댕이 덩굴줄기의 유순한 선에서 떨어지는 열매달린 가지들.
어느 산비탈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듯한 당단풍.
저 나무에 떡판뿌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가늘지만 성깔있어보이는 매화나무 둘.
바위위에서 쌓인 낙엽부스러기에 뿌리를 내리고 겨우겨우 가지를 만들며
꾸준히 한 방향으로 가고있는 소사나무.
훤칠한 롱다리 황피느릅
척박하고 건조한 자갈땅에서 산짐승에 부대끼면서도 꼿꼿한 자세를 잃지않는 팥배나무.
계속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경사지에서 뿌리를 드러내면서도 버티고 살아가는 화살나무.
가슴을 텅 비우고 가지가 자유로운 영혼이 된 벚나무.
땅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세상에 나온 댕댕이 덩굴.
갖은 풍상에도 지치지않고 왕성한 가지펼침을 보이는 매화나무.
뼛골이 다 삭아가도 다시 용솟음쳐 오르는 자두나무
따가운 햇살에 내장을 내어 말리고 들배지기로 일어서는 참빗살나무.
전시회를 보고나서 포은아트홀을 빠져나오니 겨울 초입의 싸늘한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왠지 가슴 한 편에서 올라오는 봄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 봄기운이 진정 한국분재의 봄소식이라면, 또한 분재가 기술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길로 가는 기운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은아트홀에서 열린 불이분재도량3회 전시회에 붙여
포은 정몽주선생의 시 한 편 올립니다.
눈내리는 12월 초에 핀 벚꽃입니다.
春興 춘흥
鄭夢周(정몽주)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多少草芽生(다소초아생)
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밤 깊어 희미하게 빗소리 들려라
눈 다 녹아 남쪽 개울에 물 불어날 것이니
풀싹은 얼마나 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