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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자유(靑瓷釉)

必 霧 2012. 7. 8. 14:02

 

청자유(靑瓷釉)

 

 

1. 청자유(靑瓷釉)에 대한 이해

청자를 만드는 유약. 1~3% 정도의 산화제이철(Fe2O3)을 함유한 투명유(초목재유나 석회유)1250도 정도에서 환원소성하면 연한 청록색 유조를 띄는 유약.

착색제인 산화철을 첨가하지 않고, 철분이 많은 나뭇재 유약만을 쓰거나, 1~3% 정도의 철분을 포함한 태토에 철분이 없는 투명유를 시유해서도 만들 수 있다. 청자유는 이와 같이 전래의 녹청자유와 태토를 잘 정제하여 만든 것이니 녹청자유에서 발전한 것이다.

유약에 들어간 철분이 산화 소성에 의해 산화제이철(Fe2O3)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면 유색은 연한 황색이 되고, 환원소성에 의해 산화제일철(FeO) 상태가 되면 연한 녹색이 된다. 그러므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으면 유색이 녹황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띠게 되는데 이 또한 청자라 부른다. 소성 방식이나 발색 결과가 아니라 유약과 태토가 명명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구리 성분의 산화에 의한 녹유(綠釉)는 청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철이 유약 속에 녹아서 존재할 수 있는 함량이 2~3%이어서 산화철의 함량을 그 이상으로 높이면, 환원 부족으로 인해 황갈색이 나타나거나, 과포화된 철 입자가 유면에 떠올라 검은색으로 발색하게 된다. 그러므로 짙은 발색을 원할 경우 산화철의 함량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시유를 두텁게 하거나 여러 번 시유해야 한다.

 

석회유 대신 나뭇재나 짚재 등을 쓰면 청자의 유조가 좋아지는 까닭은, 재가 철분이나 망간 그리고 인산 등의 미량 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산은 유약 속에 기포를 만들어 유약의 색조를 부드럽게 하고 온화하고 안정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청자는 유 속에 녹아 있는 철분에 의한 것이므로 유층이 얇으면 선명한 청자색을 얻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유의 두께는 1mm정도이나, 청자유는 3mm정도로 두껍게 시유한다. 또 청자유는 투명유이므로 바탕흙(소지)의 성분과 색에 따라서도 유조는 달라진다.

 

2 청자(靑磁)의 역사

1) 중국

기원은 은((전국(戰國) 시대 무렵에 중국 각지에서 만들어진 회채도(灰彩陶)에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이 특히 중국 남부지방에서 발달하여 삼국·서진(西晉) 무렵에는 회녹색의 고월주요(古越州窯:古越窯)라 불린 원시적인 청자가 저장성[浙江省]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남북조시대(
南北朝時代) 말기에 이러한 청자는 중국 북부에서도 제작되어 화려한 대작도 나타났다. 당대(唐代)에는 각지에 명요가 생겼고, 특히 웨저우요[越州窯]의 청자는 유명하였다. 당말오대(唐末五代)에는 질과 양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 제품은 비색청자(翡色靑瓷)라 하여 시문(詩文)에도 구가(謳歌)되었다.

 
송대(宋代)에는 웨저우요의 흐름을 이어받은 룽취안요[龍泉窯], 화북(華北)의 야저우요[耀州窯]에 아름다운 청자가 구워지고, 또 그 영향을 받아 각지에 청자요가 생겼다. 북송(北宋) 말기에는 수도인 변경(폣京:開封)에 관요(官窯)가 설치되었다 하나 제품은 불명이다. 오늘날 여관요(汝官窯)라 불리는 것이 그것에 해당한다는 설도 있다
.

 
남송(南宋)에서는 수도인 항저우[杭州] 근교에 관요가 설치되어 절묘한 청자를 구워냈다. 그 무렵 룽취안요에서도 침청자(砧靑瓷)라 불리는 분청색의 아름다운 청자가 양산되어 해외에 다량 수출되었다. 송대에서 원대(元代)에 걸쳐서 침청자(砧靑瓷)의 색조는 녹색조가 강해지고, 천룡사청자(天龍寺靑瓷)로 바뀌었다. 명대(明代) 초기는 천룡사청자의 전성기이며, 명대 중기 이후 작조(作調)는 저하되고, 투명성이 강한 칠관청자(七官靑瓷)로 이행되었다. 이 밖에 청조(淸朝)가 되면서 징더전[景德鎭]어기창(御器敞)인 연요(年窯)라 불리는 담청색 청자에서 수작을 볼 수 있다.( 중국 청자 역사 출처 네이버 사전)

 

2) 한국의 청자

이미 통일신라 말기에 청자를 만들고 일부 백자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고려에 와서 청자가 더욱 발전, 세련되어 고려청자의 이름이 높다. 고려자기의 주류는 청자이며 그 밖에 백자·, 철유, ·흑유 등은 청자에 부수되는 것이므로 고려자기의 시대구분도 청자를 중심으로 한다.

<전기>

고려 초기 강진의 해무리굽청자가마는 점차 확산되고 다른 해무리굽청자가마는 점차 없어지거나 지방의 조질 청자가마가 되고 녹청자가마도 생겨나게 된다. 강진가마에서는 청자의 질과 형태와 문양이 안정되고, 중국의 여러 양식과 번조수법이 고려적으로 변모해 나가 16대 예종 연간까지는 그 질과 양식에서 중국적인 것을 거의 청산한 단계에 이른다. 그러므로 고려 초에서 16대 예종(1122)까지를 전기로 한다.

<중기>

17대 인종 때부터 고려자기가 고려적으로 아름답게 세련되어 독특한 비색(翡色) 청자를 완성하고, 18대 의종 때는 상감기법과 문양구성이 가장 뛰어났으며, 청자·철채(鐵彩)·, 청자상감(靑磁象嵌)·, 진사채(辰砂彩, 또는 銅彩), ·연리문(揀理文), ·철채상감·, 철유(鐵釉), ·흑유(黑釉), ·백자(白磁), ·백자상감, ·화금자기(?金磁器) 등 다종다양한 자기가 매우 세련되었으며 청자기와도 만들었다.

인종대에 이미 귀족 간의 알력이 심화되다가 의종 때 무신의 난이 일어나고 이어 무신이 집권한 시대의 고려자기는 질과 양식이 퇴보하였지만, 몽고군이 침입하기 전까지는 고려자기의 모습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몽고군이 침입하면서부터 급격히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1123(인종 1)부터 몽고가 대군으로 침입하기 직전인 1230(고종 17)까지를 중기로 한다.

<후기>

몽고 침입 이후 원종대와 충렬왕 초까지는 소수의 상품(上品)을 제외하고는 고려자기는 많이 퇴보하였으나 중기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을 때이고, 충렬왕 10년 이후부터 화금과 진사설채가 다시 나타나고 새로운 기형과 문양이 생기고 청자의 질이 좋아지는 등 일시적 성황을 보이다가 다시 퇴보하여 고려말에 이르므로, 1231년 몽고침입부터 고려 말까지를 후기로 잡는다.

 

 

 

3. 한국 현대 청자 화분 감상

필자의 경우 천광에서 전래 청자와 유사한 청자는 아직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이미 일반화된 방식이나 기법에 관심을 갖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해보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 기인할 가능성이 있다.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은 청자 계열이 아닌 <청백자(=영청자)> 계열로 보이는 것이어서 다음에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해강 유근형 선생의 청자화분을 보기로 한다.

 

 

1 청자상감포류수금연당초문육각육족분(靑瓷象嵌蒲柳水禽蓮唐草文六角六足盆) 18.2x16 유근형.

 

일본의 분기대도감 세 권 중 하권 132쪽에 실려 있다. 이름은 <고려청자상감육각>으로 간략하게 명명, 기재된 것을 필자가 정식으로 명명해 본 것이다. 일본 분기대도감 본문의 소개글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본래는 한국 현대도예가 근형(柳根瀅)의 작품이다. 옛가마의 운학문 기법 소위 미시마(三島) 기법을 현대적으로 조합한 디자인의 분기(盆器)이다. 감히 현대분을 수록하여 참고로 제공한다. (미시마 기법이란 분청사기 기법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에 제시한 두번째 화분과 비교해 본 결과 위 화분의 문양은 운학문이 아니라 당초문이었다.-운학문이란 말을 해당 화분의 문양을 정확히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마 기법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 어법일 수 있다.)

 

 현대 작품이지만 고분을 싣는 난에 실었으니 참고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뜻을 담고 있고 초점은 미시마 수법의 현대적 활용에 있으니 이는 옛 인화, 상감, 박지 기법을 참고 삼아 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명명의 간략함, (설명의 오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진지한 검토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청자분 또한 해강 유근형 선생 작인데, 현재 국내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2010 2월 해강기념관에서 그 존재를 실제로 확인한 화분이다. 위의 것과 아울러 그 형태상 현애용 분재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높이는 높지 않았어도 입지름은 상당히 큰 분으로 위 화분과 유사한 규격이었다.

 

 

2-1 청자상감포류수금연당초문육각육족분(靑瓷象嵌蒲柳水禽蓮唐草文六角六足盆) 유근형

 

 

2-2 청자상감포류수금연당초문육각육족분(靑瓷象嵌蒲柳水禽蓮唐草文六角六足盆) 유근형

 

 

2-3 청자상감포류수금연당초문육각육족분(靑瓷象嵌蒲柳水禽蓮唐草文六角六足盆)  유근형

 

2-4 청자상감포류수금연당초문육각육족분(靑瓷象嵌蒲柳水禽蓮唐草文六角六足盆) 유근형작

 

해강 유근형 선생은 일본분기대도감에 실린 화분을 제작할 때 최소한 이 두 점 이상을 함께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2-1의 액자 틀 속의 그림과 위 분기대도감 청자분의 액자틀 속의 그림을 비교하면 양자는 그림의 발상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면서 세부에서 사소한 차이만을 갖고 있다. 또 일본 분기대도감의 청자분의 옆면의 문양은 확대해 보면 운학문이 아닌 당초문으로 2-3과 같은 문양이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형태와 규격도 유사하므로 위 분기대도감의 청자분이나 해강기념관의 청자분은 삼면에 2-1, 2-2. 2-4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 면들은 당초문이 역상감된 육각분이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조는 둘째 경우가 좀더 짙은 색조였다.

그렇다면 일본분기대도감의 청자분도 아래 청자분처럼 2-4의 연꽃과 연잎 그림을 한 면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4. 일본 청자화분 감상

일본 도예인들이 백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표하지 않지만 청자에 있어서 한국도예인들에 관심을 표하거나 간혹 한국에 와서 배우는 도예인이 있는 것은 고려 청자의 유색(釉色)과 유조(釉調)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려청자는 중국과는 다른 고려 특유의 비색(翡色) 유조를 지니고 있었듯이 현대에 재현된 한국 청자의 유조도 중국 일본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청자 화분도 잘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일본 청자의 유조는 대체로 우리보다 중국 용천 청자의 유조에 가까운 듯하다.

 

※ 침청자(砧靑瓷)와 천룡사청자(天龍寺靑瓷)-일본 도자계의 분류 용어

중국 북송 후기부터 청자제조기술이 발달하여 아름다운 비색(秘色) 청자의 제작이 가능해지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침청자(砧靑磁 ; 기누타 청자)라 부르고, 중국 남송 말에는 도자기 수출 증가로 재료가 모자라 유색이 어둡고 녹색이 짙어지는 누런 청자로 바뀌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천룡사(天龍寺 ; 텐류지)청자라 부른다. (혹자는 원대와 명대 초로 잡기도 한다.)

침청자(砧靑磁 ; 기누타 청자)분청색 용천청자 중 어룡같은 손잡이가 달린 화병이 있는데 그 형태가 마치 다듬이돌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란 다듬이돌이란 뜻이다. 천룡사(天龍寺 ; 텐류지) 청자의 어원은 그런 색깔의 향로가 교토의 덴류지 절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붙인 것이라는 설과, 이들 청자가 무로마치 시대에 덴류지선 (天龍寺船)에 실려 전래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청자는 이후 명나라 후기에는 투명성이 강한 칠관청자(七官靑磁)로 바뀌고, ()나라 때에는 징더전요[景德鎭窯(경덕진요)] 연요(年窯)에서 담청색 청자를 생산한다. 오늘날의 청자 생산중심지는 여전히 저장성 일대이다.

 

 

참고를 위해 일본 청자 화분을 싣는다. 청자(天龍寺 靑磁)

 

3. 고도천룡사청자암화문외연모과식

 

4 청자유(靑瓷釉) ()     11x4  일본 진갈향산작

 

5 청자액입농목문(靑磁額入籠木文外緣撫角正方) 이등둔양

 

6 청자(靑磁) 송영희미자 14.2X11.3X4

 

7. 청자승연칠보모란투문환 서지소 분상87

 

<참조>

용천요 청자와 고려청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유약색, 즉 청자색에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사람이 비색(翡色)이라고 했을 만큼, 그린과 블루 사이의 투명하고 밝은 청색이 특징이다. 반면 용천요 청자는 역사가 긴 만큼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초기에는 여요 청자에 가까운 하늘색을 보이지만 남송시대에는 유약을 여러 번 분장하듯 발라, 분청색(粉靑, 분청사기의 분청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말을 쓴다)이 된다. 이는 달리 벽녹색(碧綠色)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원나라 때가 되면 수출용 대량생산에 맞추기 위해 여러 번 바르기보다 처음부터 유약을 두껍게 발라 구워 짙은 녹청색으로 바뀐다.

약간의 전문성이 있는 일본 애호가들은 이 둘을 구별해서 앞의 것은 기누타()청자, 뒤의 것은 덴류지(天龍寺) 청자라고 한다. ( 출처-한국미술정보개발원))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심천(心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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