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이야기 223

피터팬의 추억

35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저를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되어 어제 찾아왔습니다. 생각해보면 교육자로서 소양도 갖춰지지 않은채 몽둥이로 가르치던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피터지게 팬다고 별명이 피터팬이었던 시절. 저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대학보내고나서부터 연락이 끊겨 이태껏 소식을 모르고 있던 친구입니다. 형편이 너무 어려운데도 선한 마음을 지닌 친구라서 어떻게 사는지 항상 궁금했던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녀석이 아니라 결혼해서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들도 있고 일도 잘풀려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서고, 좋은 일들도 많이하는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못했던 얘기보따리를 풀고, 식사도 하고, 땅구경, 나무구경을 하고나니 같이 온 부인이 노래선물을 하겠답니다. 제가 노래를 못해서 노래를 시키면 짧..

줄줄이사탕 같은

어제 코로나 2차예방접종때문에 읍내를 다녀왔습니다. 접종하고 30분 대기했다 가라는데 손님이 너무 많은게 싫어 그리 멀지않은 이백리 돌가게를 갑니다. 먼저 와계신 분이 돌무더기 두개를 알려주며 자기가 골라놓은 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돌쇠지만 저보다 증세가 조금 더 심하십니다. 돌쇠 둘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말이 통합니다. 골라온 돌 다섯. 아무리 골라가도 제꺼는 남아있습니다. 돌 두개가 궁합이 딱입니다. 꼭지에 호수도 있고 시루떡돌 두개 요 둘도 궁합이 딱 거북돌 거북이 등딱지입니다. 찍던 중에 옆의 돌 하나도 찍어 봅니다. 재질이 다른 돌 두개가 붙어 있는데 나름 재미있습니다. 아까 그 돌쇠분이 돌아오는 길에 있는 대청호반에 펜션을 하신다길래 들러보았습니다. 뷰도 좋고 방에 딸린 풀장이 있습니다..

동구다리, 동구생일

이번 추석은 각자 제자리에서 도나 닦자해서 지난 장마에 무너진 동구다리를 다시 지었습니다. 첫 다리는 그냥 운동삼아 산에서 낙엽송을 베어다가 지었는데 5년을 채 못 버팁니다. 녹이 안스는 아연각관으로 기초를 만듭니다. 기둥을 두개로 하려다 세개로 하니 수평잡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쪽은 통바위라서 괜찮은데 반대쪽이 흙이라서 아래에서부터 돌과 시멘트로 쌓아올렸습니다. 하루 말리고 방부목을 잘라 볼트로 고정시킵니다. 아연관이 단단해서 충전드릴 하나 해먹고 100m짜리 릴선을 사다가 전동드릴로 박았습니다. 미끄럽지 않게 하기위해 다시 얇은 방부목을 댔습니다. 간격을 2cm씩 띄워 밑의 물이 보입니다. 다리가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어 전의 다리에 비해 부자다리가 되었습니다. 자재비는 접목 하루 일당쯤 들어간것 같..

오솔길

오늘 새벽기온이 5도 입니다. 풀깎기 딱 좋은 날입니다. 동구다리 너머도 깎고 이쁘게 피어가는 개미취 옆도 깎고 뒷산쪽의 오솔길도 깎습니다. 마님께서 밤주우러 가는 길입니다. 기온은 쌀쌀한데 날이 너무 화창해서 노총각 돌쇠의 가슴 속에 가을이 한가득 들어옵니다. 아점은 자급자족 영양밥. 은행, 산밤, 표고, 호박, 대추, 고추, 부추 모두 이땅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맛은 상상에 맡깁니다. ㅎㅎ 식사 후 동구다리에 누워 본 가을하늘입니다. 마님께서 저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다 잠이들어 다리위의 가을거지가 되셨습니다.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갈수록 힘든 세상이 되어 갑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어찌 헤쳐 나갈지 걱정도 많이 됩니다. 저도 촌구석에 틀어 박혀 지내다 보니 외롭고 힘들 때도 많은데 그럴 때면 한번씩 꺼내보는 책이 있습니다. 화가 이중섭이 1953년경부터 죽기 한해 전인 1955년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전쟁과 가난을 못이겨 현해탄 너머 친정으로 건너간 부인 남덕여사와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발간된 책입니다. 일본어로 쓴 편지를 시인 박재삼 선생이 번역을 하셨고 김소운 선생이 감수를 한 글들입니다. 그리 길지않으니 편지 하나 소개해봅니다.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군(南德君), 당신의 편지 무척 기다리고 있던 중 3월 3일자, 편지 겨우 받았소. 당신의 불안한 처지 매일 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