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霧山邦/천방지축 귀농일기

라일락 촛대걸이와 미네르바의 부엉이

必 霧 2013. 9. 20. 15:08

 

 

이곳은 마루에 조명이 없습니다.

설치를 할까 하다가 그냥 깜깜한 마루에 앉아 밤풍경을 보는것도 운치가 있을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달이 밝으면 밝은대로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괜찮습니다.

반딧불이 어두운 허공에 그려내는 아름다운 선을 감상하는것도  또다른 흥취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촛불을 밝히는것도 좋을것 같아

지난번에 사온 부엉이 촛대를 걸 수 있는 걸이를 만들었습니다.

아파트를 재건축하느라 잘라놓은 나무들 속에서 골라온 라일락나무의 겉껍질을 벗기고

부분적으로 속살을 드러내도록 한번 더 깍아낸 다음에 사포질을 하니 나름 느낌이 괜찮습니다. 

마루의 기둥에 고정시켜 촛대를 걸고 씨옥수수와 나무바가지까지 걸어 놓으니

그럭 저럭 자연스러운 맛이 납니다.

오늘 밤에는 촛불을 한 번 켜봐야겠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촛불을 켜본 모습입니다.

밤에 활동하는 부엉이의 습성에 맞춰 부엉이 촛대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참 제격입니다.

 

 

 

 

 

 

 

 

캄캄한 밤에 빛나는 부엉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헤겔이 <법철학>의 서문에서 역설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원래 미네르바는 지혜의 神인 아테네여신의 로마식 표기인데

미네르바의 상징인 부엉이는 세상을 살피고 세상에 신의 뜻을 전하는 전령을 의미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는 말은

모든것들은 결국 끝무렵이 되어서야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 인생도 황혼 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차츰 깨달아가기 시작하는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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