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서정시학 작품상 수상작입니다.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
황 학 주
기적처럼 바다 가까운 데 있는 집을 생각하며 살았다
순서가 없는 일이었다
집터가 없을 때에 내 주머니에 있는 집
설계도를 본 사람 없어도
집 한 채가 통째로 뜨는 창은
미리 완성되어 수면에 반짝였다
나무 야생화 돌들을 먼저 심어
밤바다 소금별들과 무선 전화를 개통해 두고
허가 받지 않은 채 파도소리를 등기했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하다
출입문 낼 허공 옆 수국 심을 허공에게
지분을 떼 주었다
제 안의 어둠에 바짝 붙은 길고 긴 해안선을 타고
다음 항구까지 갈 수 있는 집의 도면이 고립에게서 나왔기에
섬들을 다치지 않게 거실 안으로 들이는 공법은
외로움에게서 배웠다
물 위로 밤이 오가는 시간 내내
지면에 닿지 않고 서성이는 물새들과
파도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가식으로 정렬된 푸르고 흰 책등이
마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바다 코앞이지만 바다의 일부를 살짝 가려둘 정도로
주인이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도 집을 좋아해 줄 수 있도록
자연으로 짓는 게 기본
순서를 생각하면 순서가 없고
준비해서 지으려면 준비가 없는
넓고 넓은 바닷가
현관문이 아직 먼데 신발을 벗고
맨발인 마음으로 들어가는 집,
내 집터는 언제나 당신의 바닷가에 있었다
<수상소감>
가장 멀리 가서 가장 잘 어두워지는 그런 곳에서
황 학 주
7년전 고흥 바닷가에 일곱 평짜리 조립식 주택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설가 김훈이 내려와 보고 남만이라는 옥호를 지어주고 갔습니다.
남녘 남자에 오랑캐 만자를 썼지요. 집이 작고 추례해 오랑캐가 사는 집 같다고 한 것인데,
6년 동안 서울에서 그 집 남만을 들락거리며 살다 재작년에 언덕배기에 새 집을 지었습니다.
오랑캐 살던 집이 지금은 시인의 집이 되었네, 라고 할 만하니 이만하면 출세입니다.
남쪽이나 서쪽 바닷가를 헤맬 때 저는 갯벌 위에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갯벌 위에 인간의 집을 앉힐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동쪽 바닷가를 헤맬 때는 늪지 위에 집을 짓고 싶어서 그런 땅을 늘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집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가 언제나 제겐 중요했습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이냐 보다 집을 지으면서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집을 짓는 고독한 순간이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불가침의 장소성이 더 중요한 문제였지요.
집을 저보다 더 훌륭하게 지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에.
겨우 오랑캐 같은 영혼이 혼자 들어 사는, 누군가와 함께 뒹굴며 나누기에는 아직 부족하기만 한 집에 주신 과한 상이지만 상을 받아서 기쁩니다.
이 상을 받게 되었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는 막 어두워진 후엿습니다.
그러고는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시인이 詩를 써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재주가 있어서 상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같은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따스하고 예쁜 상에 마냥 수줍어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뜨끔한 것도 시인다우라는, 시인 노릇 하라는 꾸지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재주를 감추려고 때론 노력하지 않는 척하면서 열심히 살고, 그렇게 詩도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밀려가고 쓸려가는 것이 느껴지는 불가지한 저녁 무렵,
詩가 무엇인지 詩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다 알 수는 없지만 심사위원들께도 서정시학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큰 힘을 준 벗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용기를 내, 가능하면 멀리 가서 가장 잘 어두워지는 그런 곳에서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는 詩를 또다시 꿈꾸겠습니다.
언젠가 모든것 훌훌 떨구고 어느 고즈넉한 바닷가에 집을 지을 기회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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