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모음/삶, 사랑에 관한 詩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

必 霧 2014. 2. 28. 23:22

 

 

제3회 서정시학 작품상 수상작입니다.

 

 

 

 

 

 

어느 목수의 집짓는 이야기

 

 

황 학 주

 

 

 

 

기적처럼 바다 가까운 데 있는 집을 생각하며 살았다

순서가 없는 일이었다

집터가 없을 때에 내 주머니에 있는 집

설계도를 본 사람 없어도

집 한 채가 통째로 뜨는 창은

미리 완성되어 수면에 반짝였다

 

나무 야생화 돌들을 먼저 심어

밤바다 소금별들과 무선 전화를 개통해 두고

허가 받지 않은 채 파도소리를 등기했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하다

출입문 낼 허공 옆 수국 심을 허공에게

지분을 떼 주었다

 

제 안의 어둠에 바짝 붙은 길고 긴 해안선을 타고

다음 항구까지 갈 수 있는 집의 도면이 고립에게서 나왔기에

섬들을 다치지 않게 거실 안으로 들이는 공법은

외로움에게서 배웠다

물 위로 밤이 오가는 시간 내내

지면에 닿지 않고 서성이는 물새들과

파도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가식으로 정렬된 푸르고 흰 책등이

마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바다 코앞이지만 바다의 일부를 살짝 가려둘 정도로

주인이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도 집을 좋아해 줄 수 있도록

자연으로 짓는 게 기본

 

순서를 생각하면 순서가 없고

준비해서 지으려면 준비가 없는

넓고 넓은 바닷가

현관문이 아직 먼데 신발을 벗고

맨발인 마음으로 들어가는 집,

내 집터는 언제나 당신의 바닷가에 있었다

 

 

 

 

 

 

 

 

<수상소감>

가장 멀리 가서 가장 잘 어두워지는 그런 곳에서

 

황 학 주

 

 

7년전 고흥 바닷가에 일곱 평짜리 조립식 주택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설가 김훈이 내려와 보고 남만이라는 옥호를 지어주고 갔습니다.

남녘 남자에 오랑캐 만자를 썼지요. 집이 작고 추례해 오랑캐가 사는 집 같다고 한 것인데,

6년 동안 서울에서 그 집 남만을 들락거리며 살다 재작년에 언덕배기에 새 집을 지었습니다.

오랑캐 살던 집이 지금은 시인의 집이 되었네, 라고 할 만하니 이만하면 출세입니다.

남쪽이나 서쪽 바닷가를 헤맬 때 저는 갯벌 위에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갯벌 위에 인간의 집을 앉힐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동쪽 바닷가를 헤맬 때는 늪지 위에 집을 짓고 싶어서 그런 땅을 늘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집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가 언제나 제겐 중요했습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이냐 보다 집을 지으면서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집을 짓는 고독한 순간이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불가침의 장소성이 더 중요한 문제였지요.

집을 저보다 더 훌륭하게 지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에.

겨우 오랑캐 같은 영혼이 혼자 들어 사는, 누군가와 함께 뒹굴며 나누기에는 아직 부족하기만 한 집에 주신 과한 상이지만 상을 받아서 기쁩니다.

이 상을 받게 되었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는 막 어두워진 후엿습니다.

그러고는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시인이 를 써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재주가 있어서 상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같은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따스하고 예쁜 상에 마냥 수줍어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뜨끔한 것도 시인다우라는, 시인 노릇 하라는 꾸지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재주를 감추려고 때론 노력하지 않는 척하면서 열심히 살고, 그렇게 도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밀려가고 쓸려가는 것이 느껴지는 불가지한 저녁 무렵,

가 무엇인지 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다 알 수는 없지만 심사위원들께도 서정시학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큰 힘을 준 벗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용기를 내, 가능하면 멀리 가서 가장 잘 어두워지는 그런 곳에서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는 를 또다시 꿈꾸겠습니다.

 

 

 

 

 

 

 

 

  언젠가 모든것 훌훌 떨구고 어느 고즈넉한 바닷가에 집을 지을 기회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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