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놋쇠로 만든 방짜대접에 물을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마시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땀흘려 일하고나서 한대접 벌컥벌컥 들이마시면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처음 이 땅에 와서 먹어본 물맛은 그냥 심심한 맛이었달까.
지하 50m의 암반수인데 별로 맛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물맛에 익숙해지다 보니
가끔 올라가서 마시는 도시의 수돗물맛에 적응이 안됩니다.
그냥 간단한 된장찌개를 끓여도
도시의 수돗물이 들어간 음식과 이곳의 암반수가 들어간 음식의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오늘 아침 배추를 심을 고랑을 만들고 나니 마눌님께서 오이냉채를 준비했네요.
이땅에서 나온 물과 오이와 풋고추와 깨가 어우러져 절묘한 맛입니다.
대숲 바람소리
송수권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하게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