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여기저기 익어갑니다.
아그배 대실
풍령가막살
고욤
나래회나무
참빗살 백실
꽃이 귀해져가는 시기에 개미취가 흐드러집니다.
뒤쪽의 칠자화는 꽃받침을 붉게 물들여가고...
뻐꾹나리도 잎이 시들어지면서 꽃을 피웁니다.
담쟁이는 몇장 안남은 잎으로 마지막 가을을 불태웁니다.
찔레는 날이 추운데 왜 불을 안때냐고 시위를 합니다.
첫 불을 넣었습니다.
며칠 이일 저일 무리하게 강행군을 했더니 약간 몸살기가 있는데
오늘밤은 구들에 뜨끈하게 지져야겠습니다.
우물
ㅡ 스윙 바이*
천융희
캄캄한 뚜껑을 닫으면 여긴 숨어 있기 좋은 소행성이다
입술을 둥글게 오므린 블랙홀
절반은 깨어 있고 절반은 묻혀 있다
바람의 호흡을 거머쥐고 휘파람 소리를 낼 때까지
비튼 문장을 부리에 물고
낯선 감정이 날개에 촘촘히 박힐 때까지
좌우 수직으로 비행할 때까지
가까스로 완성된 이끼는 충돌의 틈에서 웃자란 질문이다
비스듬히 창문을 열면 수면에 파문지는 검은 하늘
하늘에 얼비치는 별은 문장의 좌표다
궤도를 따라 벽을 오르면
그러니까,
바닥에서 밀어 올린 무수한 울음이 있다
나는 두 개의 하늘 사이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간혹 휘파람 소리에
가녀린 깃털을 부비는 새 한 마리 둥글게 날아오른다
* 스윙바이 : 우주탐사선의 항법중 하나.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끌려 들어가다가 튕겨져 나가는 탄성을 이용하여 연료를 절약하며 비행하는 항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