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必 霧 2020. 8. 28. 16:55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갈수록 힘든 세상이 되어 갑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어찌 헤쳐 나갈지 걱정도 많이 됩니다.

 

저도 촌구석에 틀어 박혀 지내다 보니

외롭고 힘들 때도 많은데 그럴 때면 한번씩 꺼내보는 책이 있습니다.

화가 이중섭이 1953년경부터 죽기 한해 전인 1955년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전쟁과 가난을 못이겨 현해탄 너머 친정으로 건너간

부인 남덕여사와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발간된 책입니다.

일본어로 쓴 편지를 시인 박재삼 선생이 번역을 하셨고

김소운 선생이 감수를 한 글들입니다.

 

 

 

 

 

그리 길지않으니 편지 하나 소개해봅니다.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군(南德君), 당신의 편지 무척 기다리고 있던 중 3월 3일자, 편지 겨우 받았소.

당신의 불안한 처지 매일 밤 나쁜 꿈에 시달리며 식은땀에 흠뻑 젖은 당신을 생각하고

대향(大鄕)은 남덕군에게 그리고 어머님에게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소.

 

3월 3일에 낸 내 편지에 부탁한......(새로운 서류 각각 한 통씩)

그걸 받으면 당신에게 전화하고 열흘 이내에 부산을 떠나겠소.

더 빠를는지도 모르겠소. 얼마 안 있어 만나게 되오.

마씨의 돈은 내가 직접 받아가지고 갈 테니 걱정 마시오.

이제부터는 애처, 애아를 위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길이 여러가지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나쁜 꿈과 식은 땀에 시달리지 않도록 충분한 섭생을 하시오.

 

지금까지 나는 온갖 고생을 해왔소.

우동과 간장으로 하루에 한 끼 먹는 날과 요행 두 끼 먹는 날도 있은 그런 생활이었소.

열흘쯤부터는 심한 기침으로 목이 쉬고 상당히 몸이 피곤한 상태요.

지난 겨울에는 하루도 옷을 벗고 잘 수가 없었고 최상복형이 갖다준 개털 외투를 입은 채 매일 밤 새우잠이었소.

불을 땔 수 없는 사방 아홉 자의 냉방은 혼자 자는 사람에겐 더 차가와질 뿐 조금도 따뜻한 밤은 없었소.

거기다가 산꼭대기에 지은 하꼬방이기 때문에 거센 바람은 말할 나위가 없소.

춥고 배고픈, 그런 괴로운 때는...... 사경(死境)을 넘어 분명히 아직도 대향은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만난다는 희망과,

생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내포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고,

행동하는 회화를 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뎌 왔던 것이었소.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생활안정과 대향의 예술 완성을 위해서

오직 최선을 다할 작정이니 나의 귀엽고 참된, 나의 내심(內心)의 주인 남덕군,

대향을 굳게 믿고 마음 편하게 밝고 힘찬 장차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지내 주시오.

이 편지를 받는대로 부탁한 서류 새로이 한 통씩 속히 작성하여 보내 주시오.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으므로 거기에 한 통씩이 필요하오.

어머님의 증명, 히로까와씨의 증명, 모던아트협회의 서류,

이마이즈미씨의 증명, 지급(至急) 항공편 등기로 부탁하오.

그것을 보내고 나서는 나에게서 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오.

고오베나 시모노세끼가 되겠지요.

 

나의 소중하고 귀여운 사람이여!

참 화공(畵工)인 중섭 대향 구촌(九村)을 마음으로 열심히 기다리고 있어 주시오.

나의 소중한 보배, 발가락군(부인의 발가락이 예쁘다 해서 지은 애칭)을 소중하게 아껴 주시오.

 

仲燮 (으뜸중 불꽃섭) 大鄕 九村

 

 

 

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고 싶은

중섭의 마음을 그려 부인에게 보낸 엽서그림입니다.

 

 

결국 중섭은 담뱃종이에 그린 그의 은지화 석점이

뉴욕의 현대미술박물관에 영구보존키로 결정되던 해인 1956년 가을에

거식증에 의한 영양실조와 간장염으로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이 만 40세의 나이에 홀로 숨을 거둡니다.

무연고자로 3일간이나 시체실에 방치되었다가...... ㅠㅠ

 

 

 

중섭의 편지를 읽다보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는 맑고 순수한 마음과 열정이 전해옵니다.

 

 

 

1951년 서귀포 피난지의 방에 붙어 있던 중섭의 詩입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한국근대회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으로 선정된 바 있는

이중섭畵工의 흰 소입니다.

 

 

 

중섭이 조카 이영진에게 건네준 말 한마디.

 

 

좋은 그림은 촌부(村婦)도 알아보는 그림이다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엄청난 예술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상 시인이 이중섭에 대해 쓴 시 한 편.

 

 

 

秘 義

 

 

具常

 

 

鄕友 李仲燮이 이승을 달랑달랑 다할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도 검은 장미빛 피를 몇 양푼이나 토하고 屍身처럼 가만히 누워 지내야만 했다.

하루는 그가 불쑥 나타나서 애들 圖畵紙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애호박만큼 큰 복숭아 한 개가 그려져 있고

그 한가운데 씨 대신 죄그만 머슴애가 기차를 향해 만세를 부르는 그런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ㅡ 이건 또 자네의 바보짓인가? 도깨비 놀음인가?

하고 픽 웃었더니 그도 따라서 씩 웃으며

ㅡ < 복숭아, 天桃 복숭아

님자 常이, 우리 具常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흥얼거리더니 휙 돌쳐서 나갔다.

그는 저렇듯 가고 10년 후, 나는 이번엔 肺를 꺼내 그 空洞을 쪼개 씻어 도로 꿰매 넣고

갈비뼈를 여섯개나 자르는 수술을 받고 외국 病床에 누워 있다.

마침 제철이라 날라다 주는 食床에는 복숭아가 자주 오르는데

이것을 집어들 때마다 나는 仲燮의 天桃 생각을 하며

ㅡ < 복숭아, 天桃 복숭아

님자 常이, 우리 具常이

이걸 먹고 요걸 먹고

어이 빨리 나으란 그 말씀이지 >

그의 그 말씀을 가만히 되뇌이기도 하고 되씹기도 한다.

그런데 차차 그 가락은 무슨 영절스러운 祝文으로 변해 가더니 어느덧 나에게

그 어떤 敬虔과 기쁨마저 주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한 내가 胎中에서부터 熟親한 또 다른 한 분의 음성과 한데 어울려 오는 것이다.

ㅡ <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피니 받아서 마시라.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 禮를 행하라 >

 

 

'다른이야기 > 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구다리, 동구생일  (0) 2020.10.06
오솔길  (0) 2020.10.06
19금 이야기  (0) 2019.07.26
  (0) 2019.07.17
늙은이 낚시  (0) 2019.07.03